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재석-박명수 콤비 (문단 편집) === 콤비 개그 이전 === [[유재석]]은 1991년 제1회 KBS 대학개그제를 통해 데뷔한 KBS 공채 7기, [[박명수]]는 1993년 데뷔한 MBC 공채 4기 개그맨으로 박명수의 데뷔 시기가 유재석보다 늦었다. 반면 유재석이 긴 무명 생활을 보낸 것과 달리 박명수는 연예인이라면 조금이라도 존재하는 무명 시절이 아예 없었으며 오히려 데뷔 초에는 [[유재석]]보다 훨씬 잘 나갔다.[* [[무한도전]]의 최전성기 시절에 유재석도 인정한 바이다. 91년에 데뷔하고 10년 가까히 무명이었던 유재석은 당시 방송 초기에 카메라 울렁증 때문에 클럽에선 춤 제일 잘 추더니 방송에선 허우적 대지를 않나, NG를 내서 방송 중에 쫒겨나기까지 하는 등 스타트가 좋지 못했고, PD들이 유재석의 재능을 아까워해서 여러 방송에 꽂아주는 식으로 방송 생활을 간신히 이어 나갔다. 반면, 박명수는 "우씨" 를 비롯한 많은 유행어와 정치 콩트로 인기를 얻으며 MBC의 각종 개그 프로그램에서 많은 활약을 펼쳤다. 이 때문에 [[무한상사]]에서도 [[유재석(무한상사)|유재석 부장]]보다 먼저 입사하며 선배였으나 유 부장이 뒤늦게 능력이 발현되며 승진 서열에서 밀려난 것으로 표현된다.] 유재석의 경우에는 10년간의 무명 시절을 지내는 동안 [[자유선언 오늘은 토요일]]에서 자신의 캐릭터로 [[메뚜기]]를 만든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연예계 활약을 지니지 못했다. 유재석은 박명수와 마찬가지로 콩트에 약하고 재미가 없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90년대 당시 박명수가 애드리브에 강한 모습을 보이며 어느정도 자기 입지를 가졌던 것과 달리 유재석은 그렇다할 입지를 지나지 못했다. 이후 유재석이 인터뷰에서 회고하기로는 지방 촬영을 갈 때 짐에 메뚜기탈을 직접 챙겨 가지고 다니는 것이 남보기 무척 창피했고 개그맨을 그냥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고 한다. 그나마 매뚜기 캐릭터로 얻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유재석은 '[[서세원쇼]]'의 토크박스라는 인기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됐는데, '''이것이 인기 개그맨 유재석 탄생의 시작이었다'''. 카메라 공포증은 그리 나아지지 못 해 심한 울렁증 때문에 시선도 한 곳에 못 맞추고 손도 벌벌 떨면서도 자신의 친구 찍새[* 많은 사람들이 웃기려고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낸 게 아닌가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있었지만 자신이 실존인물이라고 확실히 못 박았다. 대충 내용은 찍새와 학창 시절 때 놀러갔다가 홀로 잠깐 돌아다니고 찍새와 자리를 잡아놓은 곳으로 돌아가다가 여자 일진들에게 걸려서 얻어맞자 아파서 우니 여자 일진들은 "여자한테 맞았다고 꼴에 분해서 우냐?"라고 갈구자 "진짜 아파서 울었어요."라고 항변했다고 하며, 덩치도 좀 있고 인상도 무서운 친구 찍새가 나타나자 속으로 좋아했으나 알고보니 찍새는 진작에 당하고 라면 끓여주는 신세가 되어서 일진들에게 보고하러 왔다는 이야기다. 이후 이야기는 안 나왔지만 아주 낮은 확률로 불쌍해서 그냥 보내줬거나 뜯어먹을 만한 것이 없어서 라면 셔틀만 시키고 쫓아냈을 가능성이 높다.]와의 [[에피소드]] 등을 재미있게 풀어내 순식간에 인지도가 대폭 상승했다. 토크 박스 역대 결산에서 토크왕 1위를 차지했을 정도. '자, 1000원 출발!', '그래! 이놈들이야!' 등의 에피소드는 워낙 유명해 유투브에서 자세히 검색하면 아직도 찾아볼 수 있다. 그 결과 유재석은 [[2000년]] [[MBC]] [[목표달성 토요일]]의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의 진행자로 낙점되었으며 이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그다지 안면이 없던 [[최진실]]이 토크박스에 나온 유재석을 보고 PD에게 같은 목표달성 토요일의 코너 <스타 챔피언>의 MC 자리에 유재석을 적극 추천해서 유재석이 코너의 진행을 맡았는데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아서 동거동락의 진행자가 되었다고 한다. 동거동락 이후 유재석은 [[2002년]], [[일요일은 즐거워]]의 [[공포의 쿵쿵따]]를 통해 [[강호동]]과의 콤비 플레이로 엄청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다만, 이 때까지만 해도 유재석은 다소 경박하고 부담스러운 웃음소리를 냈었고, 깐죽거리기까지 해서 웃기긴 진짜 웃기는데 비호감인 연예인 이미지로 각인되던 개그맨이었다. 이후 유재석은 [[느낌표]], [[위험한 초대]], [[천하제일 외인구단]], [[해피투게더(KBS)|해피 투게더]] 등 수많은 예능들에서 대활약하며 그간의 비호감이었던 이미지를 쇄신하고 부담없는 이미지로 공전의 히트를 거두며 스타 개그맨으로서 도약하게 된다. 반면, 박명수는 데뷔 이후 무명 시절없이 상승세를 타면서 MBC 개그 전성기에 어떤 개그 프로그램이든[* 박명수는 주말 꽁트 프로그램이나 드라마타이즈 계열 프로그램이나 개그맨들 위주로 나오는 토크 위주의 퀴즈프로그램 등 MBC의 개그맨 관련 프로그램에서 안 나온 적이 없다.][* 다른 개그맨들이 주류로 활약하여 레전드가 된 프로그램들조차 박명수는 몇번씩 나온 적이 있다. 예를 들어, [[서경석]], [[조혜련]], [[김진수(코미디언)|김진수]], [[김효진(코미디언)|김효진]]이 주연인 코너인 울엄마에도 박명수는 조연으로 출연했었다. 즉 탑급 개그맨들 사이에서의 쩌리는 해봤지만 개그맨 전체에서 쩌리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다 출연[* 당연히 다 주연은 아니었지만, 주연도 많이 하긴 했었고 최소 조연은 항상 했었다.]했었을 정도의 주류 개그맨이었다. 당시 박명수의 위치는 대략 B+ 내지 A-급의 연예인으로 CF 촬영과 여러 유행어 등으로 대중들에게 존재감도 확실한 편이었다. 다만 박명수는 돌발적 변수가 잦고[* 무도에서 늘 지적받던 욕설 문제도 포함된다.] [[애드리브]]에 강한 스타일의 개그맨이었기에 애초에 [[콩트]] 개그가 어울리는 스타일이 아닌데다가 녹화시에 워낙 말을 더듬고 연기력도 부족하여[* 연기 더럽게 못한다고 PD들이 맨날 혼냈다고 본인이 인정했다.] 점점 활동이 줄어들게 되었으며 캐릭터의 폭이 제한되어 있음에도 오히려 자기 스타일을 변화시키지 않고 꾸준히 특유의 방향성을 유지시키다 보니 대중적인 인기도 줄어들기 시작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